나의 이야기

외가

단짝친구 2020. 3. 2. 00:56

가족

 

어머니는 전라남도 목포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삼 남매 중에서 첫째였다.

어머니 밑으로 3년 터울 여동생과 6년 터울 남동생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일본어를 조금 했지만 학교에 가지 못해서 글씨를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괄괄하고 억척스러운 성격이었다.

6·25 전쟁에서 인민군이 집에 들이닥치자 얼른 시체 속에 숨어 죽은 척을 했다.

인민군은 외할머니를 못 보고 지나갔고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어린 나에게 그 긴장됐던 경험을 실감나게 들려주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어린 동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줬다.

목포는 항구라는 말이 있지만 어머니에게 목포는 산이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유달산에서 뛰어놀았다.

제 집 안마당처럼 드나들었던지 스스로 유달산 다람쥐라고 할 정도였다.

 

외할아버지는 원래 본처가 있었고 사이에서 낳은 자식 여러 명이 있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를 후처로 들였다.

본처의 자녀들은 계모인 외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이모, 외삼촌과 본처 자녀들은 알고 지내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다.

 

어머니가 성인이 되기 전 외할아버지를 여의었다고 했다.

호주는 본처의 아들에게로 상속 됐고 외할머니는 스스로 먹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면서 자녀 삼 남매를 먹여 살렸다.

어머니와 외삼촌은 외할머니의 옷 장사를 도와드렸다.

외삼촌은 옷을 많이 보고 자라서 옷 사 입는 것을 아까워한다.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광주광역시에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회사에 다녔는데 서울에 올라와 일하고 있는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튼튼한 허벅지에 반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조교를 했을 정도로 젊었을 때 몸이 좋았고 사내다웠다.

그 모습에 끌린 어머니는 아버지와 서로 맞아서 연애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옥탑방에 통닭과 술을 들고 가서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결혼을 약속해서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를 설득했지만 반대에 부딪쳤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사랑의 결실로 누나를 임신했다.

그리고 출산했는데 저체중이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누나를 낳았기 때문에 결혼을 마지못해 허락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해 서울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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